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오언 (문단 편집)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경력]] == [[파일:17872-large.jpg]] 오언은 어렸을 때부터 특출난 수준이었다. 이미 U-17, U-19 등에서의 활약이 워낙 좋았기에 [[스티븐 제라드]]보다도 이른 나이에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오언은 [[글렌 호들]]이 이끄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튀니지와의 1차전에 교체로 출전해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최연소 출전 선수가 되었다.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오언은 또다시 교체로 출장했으며 동점골을 넣어 18세 190일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오언의 득점 기록은 역대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 부문 3위이다. 오언의 앞에는 [[펠레]]와 마누엘 로사스만 있다.] 하지만 팀은 2:1로 패해 빛이 바랬다. 루마니아전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오언은 잉글랜드가 콜롬비아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을 치를 때 선발로 출전했다. 잉글랜드는 경기에서 승리했고, 오언은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도 선발로 나섰다. 아르헨티나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6분 선제골로 앞서나간 와중에 오언은 페널티 구역에서 [[로베르토 아얄라]]에 걸려넘어졌고,[* 사실 [[할리우드 액션]]이었다.] [[앨런 시어러]]가 [[페널티 킥]] 주자로 나서서 동점골을 기록했다. 16분, 오언은 개인기로 전진 쇄도해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며[* 2013년에 이 골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골 3위에 올랐다.] 잉글랜드를 하드 캐리했다. 물론 잉글랜드는 연장 접전 끝에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패해 대회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오언은 역전골의 임팩트로 '''원더 보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세상은 [[펠레]], [[마라도나]]의 뒤를 이은 축구천재의 등장이라고 들썩였다. 또 이 골로 오언은 축구팬들에게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오언은 [[UEFA 유로 2000]] 예선전 초반에 잉글랜드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잉글랜드는 예선전 기간 동안 부진했고, 호들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케빈 키건]]이 감독이 되었다. 1999년 9월 4일, 오언은 6-0으로 이긴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웸블리 첫 골을 기록했다. 대회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루마니아를 상대로 한 골을 넣는데 그쳤으며[* 전반 막판에 골키퍼까지 따돌리고 2:1을 만드는 추가골을 넣었다. 그리고 후반전에 두 골을 먹으며 팀은 2:3으로 패배했다.]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 일찍 떨어졌다.[*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 2대 0으로 이기다가 2:3으로 역전패를 당한 것이 패착이었다. 독일을 1:0으로 이기긴했지만 조별리그를 2위로라도 통과하려면 루마니아에 최소한 비겨야했다.] 앨런 시어러가 은퇴하고, [[스벤예란 에릭손]]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오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그는 [[뮌헨]]의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독일과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 6골을 넣었고, 잉글랜드는 예선전에서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2002년 4월, 그는 파라과이와의 친선전에서 부상으로 빠진 주장 [[데이비드 베컴]]을 대신해 잉글랜드의 주장 완장을 찼다. 오언은 1963년의 [[바비 무어]] 이래 최연소 주장이었고, 이후에는 베컴이 부재할 경우 주장을 찰 부주장으로 정식 활약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에게 걸려 넘어지는 할리우드 액션을 보여서 [[페널티 킥]]을 유도했고 [[데이비드 베컴|베컴]]의 [[페널티 킥]]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이 패배가 빌미가 되어 아르헨티나는 사기가 꺾였고, 결국 스웨덴을 밀어붙였음에도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3위로 처진다.] 이렇게 졸전을 벌인 끝에 겨우 16강에 올라가긴 했지만 오언은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덴마크]]와의 16강전에서 기어이 첫 골을 넣었으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잉글랜드의 선제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 다만, 지금도 회자되는 [[히바우두]]의 동점골과 [[호나우지뉴]]의 프리킥 역전골에 팀은 1:2로 역전패.] 본인의 실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후 [[UEFA 유로 2004]] 예선전에서 5골을 기록했지만 대회 본선에서 오언은 조별 리그에서 또다시 골을 신고하지 못했다. 그리고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3분만에 골을 기록해 잉글랜드 최초로 4번의 주요 대회 본선에서 골을 넣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패해 탈락했다. 오언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5골을 넣었다. 2005년 5월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팀 경기 두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2005년 11월, 오언은 숙적 아르헨티나와 치른 친선경기에서 막판에 2골을 추가해 잉글랜드에게 3-2 승리를 선사했다. 2006년 5월 25일, 오언은 벨라루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경기를 치러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년 독일 월드컵]]과 현장 복귀를 앞두고 몸상태 점검을 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주장을 맡아 61분을 뛴 후 교체되어 나갔다. 오언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년 독일 월드컵]]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파라과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 축구 국가대표팀|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1, 2차전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선발로 출전했지만,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개인 80번째 출전 경기이자 스웨덴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 출전한 오언은 전반 1분경 오른쪽 무릎이 틀어지는 중상으로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나갔다. 6월 21일에 진행한 부상 진단을 통해 오언 무릎의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된 것으로 밝혀졌고, 조기 귀가 조치가 내려져 대회에 더 이상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 경기가 오언이 뛴 축구 [[FIFA 월드컵|메이저]] [[UEFA 유러피언 챔피언쉽|대회]]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09년 3월, 오언은 자신이 자주 부상을 당하는 이유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부상 때문이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상에서 재활하는 와중에 조급히 현장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었다고 인정했다.] 한마디로, [[인과응보]]인 셈이다. 이후 오언은 [[알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알바니아]]와의 경기에 복귀한 후, 신축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친선경기와 [[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스토니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고 “저는 예리해진 것 같고, 기회를 잡았을 때, 문전에서 편안함을 느낌니다.”라고 감정을 드러냈다. 오언은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해 에스토니아전에서 득점을 올렸고, [[게리 리네커]]가 종전에 세웠던 잉글랜드의 역대 최다 공식대회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 9월 12일, 오언은 3-0으로 이긴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해 구 웸블리 경기장과 신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올린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UEFA 유로 2008|유로 2008]]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경질되었고 [[파비오 카펠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오언은 파비오 카펠로 부임 후 2008년 3월의 프랑스와 치른 친선경기에 한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는데 그쳤고 더이상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